스마트팜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스마트팜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 이나래 기자
  • 승인 2016.02.01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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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팜으로 늘어난 생산량을 계속 수확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연중 고용하게 되고, 그만큼 임금을 더 지불해야 하니 농가 경영비 부담으로 이어진답니다. 수확량이 많아진다 해서 농민에게 마냥 좋은 건 아니더군요.”
최근 국내 굴지의 종자업체 관계자와 스마트팜 관련 이야기를 나누던 중 위와 같은 말을 들었다.
소위 ‘잘나가는’ 스마트팜 농장주들의 속내가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는 전언이었다.
스마트팜의 가장 큰 장점은 편리함이다. 그 편리함은 흔히 ‘해외여행을 가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농장을 관리할 수 있다’는 식으로 표현되곤 한다.
편리함 외에 수확량 증가라는 가시적인 성과도 역시 스마트팜의 효과다. 올해는 정부가 시설원예 ICT 확산사업을 시작한 지 3년차다.
농식품부는 올해 205억원을 투입해 시설원예보급 사업을 시행한다. 최근 농식품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가장 부각한 사업 중 하나도 바로 스마트팜 보급 사업이다.
그런데 정작 농촌에서 스마트팜을 대하는 시선은 그리 달갑지 않다. 스마트팜 설치 시 국고 보조가 된다 해도 농가당 부담이 수천만원을 훌쩍 넘는다. 대규모 농가는 자부담만 2~3억원을 웃도는 경우도 흔하다.
이처럼 진입 장벽이 높다 보니, 사정이 안 좋은 농가는 참여하고 싶어도 ‘그림의 떡’인 셈이다. 그렇다고 설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전국의 동종 작물 농가에 스마트팜이 확산돼 전체 생산량이 급증하면 결국 작물 전체의 가격이 폭락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영세농은 눈뜨고 앉아서 당하는 셈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호가를 누리던 시설 토마토와 파프리카가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스마트팜의 급격한 확산에 따른 생산량 증가다. 스마트팜의 적극 보급에 따른 생산자 피해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실제로 이미 발생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스마트팜이 농촌의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팜을 설치할 경제적 여건이 되는 농가는 이미 이룰 만큼 이룬 농가다.
이들이 스마트팜을 설치하면 생산량이 늘고, 시장이 포화상태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판매량 증가로 인한 추가 수익을 얻게 된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연중 고용해 인건비가 늘어나는 등 부가적인 문제가 발생하긴 하지만 일정 단계까지 조수입이 증가하는 건 사실이다.
궁극적으로 스마트팜의 다음 단계에 대한 청사진이 불투명하다. 스마트팜 자체의 편리함과 생산성, 효율성을 차치하고, 과연 그렇게 늘어난 생산량을 모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스마트팜 보급 주력 대상 중 하나인 화훼는 전체 생산액이 1조원 미만으로, 딸기 연간 생산액(1조 300억)에도 못 미친다.
심지어 화훼를 비롯해 오이, 파프리카 등 많은 채소 시장이 과거보다 소비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만 보아도 단순한 생산성 증가가 우리 농업이 지향할 점은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하다. 스마트팜 다음 단계에 대한 농업 정책의 설계가 명확하지 않다면, 스마트팜은 ICT 업체들의 배만 불리는, 농촌의 부익부 빈익빈 수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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